클로버 이야기

어렸을 적 토끼풀이라고 클로버를 불렀다. 토끼가 잘 먹어서 토끼풀이라 불렀는지는 모르겠으나 토끼를 키우면서도 아카시아 잎이나 채소류를 먹이고 땅바닥에 10cm 미만자라서 너무 작고 연약해서 토끼에게 뜯어다 줄 생각은 못 했다. 이렇게 연약한 클로버가 가을이 지나면 모든 풀이 말라죽는데 클로버는 한겨울까지 눈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다. 그런 생명력으로 한약의 재료로도 사용되고 식용 꽃처럼 비빔밥에 넣어서 사람이 먹기도 한다.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국화이기도 한데 아일랜드에서는 세 잎 클로버는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로 악마와 마귀를 막아준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고 한다.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서 포교할 때 세 잎 클로버에 삼위일체를 비교 설교한 데서 기인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클로버는 대다수가 세 잎으로 꽃말은 행복이다. 흔하지 않게 네 잎 클로버가 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기 때문에 누구나 클로버 군락지를 보면 뛰어들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행운 이 되는 사랑을 약조하기 위해 클로버밭에 앉아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행운으로 불리게 된 전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나폴레옹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나가 싸울 때, 발밑에 네 잎 클로버가 있어 신기해 허리를 굽혀 따려는 순간 총알이 머리 위를 '쌩'하며 날아갔다고 한다. 네 잎 클로버가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해 주었고 그래서 뒷날 황제까지 되었다고 하여 이 때부터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으로 전해오고 있다. 믿기 어렵지만 달리는 말에서 발아래 네 잎 클로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행복의 세 잎 클로버를 짓밟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신기루 같은 행운을 찾아 발밑의 행복을 짓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큰 행운은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 몫이다. 진짜로 네 잎 클로버를 찾은 날은 내게 무슨 좋은 행운이 올 것 같은 설렘으로 복권을 사고 싶기도 하고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올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기분 좋은 날은 클로버의 하얀 꽃 두 개를 꼬아서 하나의 작은 반지를 만든다. 클로버 줄기가 너무 약하여 하루를 버티기 어렵지만 만드는 재미에 서로 깔깔대고 웃었던 추억이 있다.
우연히 책에서 읽은 것이지만 다섯 잎의 클로버의 꽃말은 불행, 두려움이란다. 행운과 행복만을 찾아다니면 결국 불행하게 된다는 선각자의 경종으로 받아들인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행운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은 바라지 말고 제 분수를 알아 열심히 노력하며 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두 잎 클로버는 보지 못했지만, 꽃말은 눈물, 이별이다. 두 잎의 꽃말 눈물, 이별을 참고 견디면 세 잎의 행복이 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니 이런 꽃말을 만든 분의 선견지명에 탄복한다. 여섯 잎 클로버는 다섯 잎의 불행, 두려움을 이겨냈으니 기적, 희망이란다. 불행을 넘어서면 기적처럼 희망이 찾아온다.
일곱 잎의 클로버의 꽃말은 진실, 사랑이란다.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진실하게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다. 클로버 두 잎의 눈물, 이별의 강을 건너면 세 잎의 행복이 찾아오고 이런 행복들을 잘 간수하면 네 잎의 행운이 찾아온다. 행운만 너무 쫓으면 다섯 잎의 불행과 두려움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면 여섯 잎의 기적 희망이 다시 찾아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숙하게 나이를 먹으면 일곱 잎의 진실, 사랑의 경지에 들어선다. 특정 누구만을 사랑하는 좁은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의 사랑이다. 클로버의 꽃말을 음미하며 인생이란 굴곡이 있지만 살아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