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랑/- 나도 낙서 좀

반갑다, 가랑비야!

GarangBee 2023. 7. 7. 17:35

 

Pikist

 

a-garota-de-capa-vermelha.tumblr....

 

 

아주 오랜만에 가랑비 다운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도 없고 요란하지도 않은 비,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양의 비가 

아주 먼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듯 조용하게 속삭이듯 내린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니 좀 더 구체적인 시절을 이야기하자면 

아마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건너가던 무렵의 한참 사춘기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기억 역시 정확한 것인지는 나로서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랑비가 자주 내렸고 그렇게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다가 흠뻑 젖어 들어온 적도 많았다.

 

차갑지도 않고 거의 나의 체온과 비슷하게 느껴졌던 빗물에 젖어 

정처 없이 걸었던 그때 그 기억으로 걸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또 가보고 싶은 곳도 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다.

 

지금처럼 장마철이라고 해도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오더라도 언제부터 내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내리던 가랑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늘 나의 마음을 묘하게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이제 나이도 먹고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으로 단련된 연륜인 줄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출렁임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상을 보내기란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가랑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비를 마주하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러운 추억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어야 하기에 

세상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 

 

'가랑비'의 어원에 대한 재미있는 글이 있어 가져 왔다!

https://www.edupo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21 

 

[우리말 탐험] '가랑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가랑비 어원은? - 교육정책뉴스

[EPN 교육정책뉴스 왕보경 기자]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실처럼 가느다란 빗줄기는 맞고 있어도 옷이 젖어간다는 인식을 잘 하지 못

www.edupolnews.com

 

 

위 내용을 전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던 가랑비 이미지와 그나마 가장 비슷하다.

 

  • 안개비보다는 좀 더 굵고 일반적인 비에 비해서는 좀 가느다란 비
  • 게다가 바람도 전혀 불지 않는 조용한 날에 소리 없이 다가와 내리는 비
  • 잠시 오다가 그치는 비가 아니고 하루 종일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그런 비가
  • 내가 추억하는 '가랑비'의 이미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내 기억 속의 '가랑비'와 같은 비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몹시 아쉽고 그리워하던 차에 오늘 잠시나마 

내가 좋아하는 그 '가랑비'를 닮은 비가 내리고 있어 가슴이 크게 일렁거렸지만 

그건 너무 반갑고 뜻밖이라 그런 거였기에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감자전이라도 부치고 탁주라도 한 병 사러 나갔겠지만

지금은, 아니 오늘은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냥 조용히 옛 추억에 잠겨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아주 오랜만에 

가랑비 다운 가랑비를 마음껏 느껴보고 싶은 욕심에 음악을 비롯한 모든 소리를 

다 내리고 창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에 온 청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런 시간!

늘 혼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럴 시간적인 여유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wax-and-dye.blogspot.com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넘었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그냥 있으면 잘 들리지도 않는 빗소리가 궁금해 창문 가까이 다가가서 내다봐야 

비 내리는 모습과 소리가 그나마 좀 들린다, 참 보기 좋고 행복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요란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올 것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냉장고를 뒤져 간단하게나마 비와 잘 어울리는 먹거리를 준비해야겠다.

탁주를 대신할 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없으면 어떠랴!

 

어차피 저녁 때도 되었다.

오늘 저녁은 가랑비와 함께 특별한 시간을 갖기로 해야겠다.

그래, 그냥 무덤덤하게 아무런 이벤트도 없이 지나쳐버릴 수는 없지!

  • 가랑비야, 정말 반가워! 기왕에 모처럼 이렇게 만났는데 
  • 조금 더 머물면서 나와 함께 해줘, 부탁이야!

 

"서둘러 조촐한 자리라도 만들 생각이니까

  잠시만, 알았지? 그냥 가면 안 돼!"  

 

 

 

 

네가 가랑비냐옹! / all-the-beautiful-things-i-see.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