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나를 깨우쳤다
이웃집 고은이(애완견 이름)를 일주일 동안 내가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었는데,
며칠 후 다시 우리 집에 두어야 할 사정이 생겼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 출장을 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씩 맡겨야 하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니 냉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강아지 호텔을 찾아 상담했는데,
좁은 공간을 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내가 적격인 이유는 이웃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왜 내가 받을 스트레스는 생각 안 하는지 서운했는데,
말 못하는 짐승이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나에게는 거절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찡찡거려 숙면하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는 아직 어려서 그렇다 치고,
하루에 한 번 볼일을 볼 때까지 동네를 돌아야 하는 게 정말로 싫었다.
비는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데 비닐봉지와 휴지를 준비하고
줄레줄레 따라가는 내 꼴이 무슨 청승인가 싶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정이 들었는지 두 번째 우리 집에 와서는
불편한 내 속마음도 모르고 반가워 꼬리를 마구 흔든다.
어찌 날뛰는지 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고은’이는 대문을 나설 때마다 목살이가 빠질 정도로 힘을 주어,
한 집 건너에 있는 제집으로 가려고 했다.
처음에는 못 가게 할까 하다가 얼마나 가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 가는 대로 따라갔다.
대문 앞에 가더니 누가 나와서 문을 따주길 기다리는지
커다란 눈망울을 정신없이 굴리다가 내가 ‘가자’ 하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순순히 따라왔다. 다음부터는 강아지의 행동이 강하게 바뀌었다.
제 주인집 대문 앞에 가서 잠시 머무는 동안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방울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벨을 누를 수 없으니 제 몸을 이용하여 알리는 듯했다.
그래도 기척이 없으니까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속으로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강아지 주인이 귀국하는 날, 나는 지방에 갈 일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 집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도착하면 데려가라고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할 겸 그 댁에 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내 목소리를 들은 ‘고은’이는 내가 야단친 걸 다 잊었는지
달려와 반갑다고 온갖 수선을 떨었다.
나는 그때, 사람 같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도 낯선 집에 가면 밥맛이 없을 수도 있는데, 밥을 안 먹는다고,
아무 데나 오줌 싼다고 야단쳤으니 얼마나 모자라는 인간인가.
만약 그 모든 걸 주인한테 일렀다면 지금까지 좋았던 이웃과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길길이 뛰고 좋다고 하는 걸 보니
강아지가 나보다 너그럽지 않은가.
애완견을 돌보면서 배운 게 있다. 짓고 꼬리 흔드는 것밖에 할 줄 모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풀지 못하는 수많은 대화가 있다는 것을.
또 하나는 주인이 저를 이웃집에 맡기고 미국엘 갔어도
하루에 한 번씩 그 집 대문 앞에 가 보려고 하는 충심을 보았다.
원망보다 그동안 베풀어준 것에 대한 보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못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쓰기도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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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강아지를 보름 정도 돌봐주면서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주인이 이웃사람에게 맡기고 간 걸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집 대문 앞엘 가보려고 하는 충심을 보았을 때, 눈물겨웠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끙끙거려도 야단치지 않았답니다.
다시 그 강아지를 맡게 된다면 사랑으로 돌볼 것 같습니다.
그 강아지가 글을 알아서 이 글을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니어리포터 조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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