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욕심(慾心)과 욕망(慾望)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욕심과 욕망이 없다면 그건 무의미한 인생이며, 넓게 보면 인류문명이 날로 발전 향상되고 있는 것은 욕심과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과 욕망의 의미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의미가 있다.
욕심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고 분수에 지나치게 갖거나 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욕망은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고 갖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고로 욕심은 사소한 일일지라도 이기적이어서 대세를 살피지 않고 적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여기 일제 때 나온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물거품으로 끝난 내용을 옮겨 볼까 한다. 요정(妖精)과 거지(fortune and beggar)라는 제목 아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불쌍한 거지가 어느 날, 너덜너덜한 낡은 자루를 가지고 구걸하며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그는 걸으면서 이 세상에 꽤 많은 부자들이 있다고 불만스런 어조로 투덜거렸다. "그 부자들은 자기가 충분히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아! 부자들은 항상 자기가 가진 것보다도 더 많이 가지려고 바란단 말이야. 지금 내가 아주 적은 돈이라도 가졌으면 나는 행복하겠다. 나는 아주 많은 돈을 원치 않겠다." 하고 투덜거렸다.
행운이라는 이름의 요정이 이 불쌍한 거지의 불만스러운 소리를 듣고 좋은 선물을 주려고 그에게 찾아왔다. "친구여!" 요정이 말했다. "나는 당신께 도움을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자루를 벌리세요. 나는 당신께 드리려고 금을 가지고 왔는데 이 금을 자루에 넣겠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금이 땅 위에 떨어지면 곧 먼지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자루는 낡았습니다. 많이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이 채우면 자루는 터지고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 거지는 너무 행복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는 자루를 벌렸다. 금은 황금 물결 같이 그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곧 자루에 거의 찼다.
"이것으로 충분한가요?" 요정은 물었다.
"아니요. 아직은요." 거지는 말하였다.
"자루가 낡아 터지려고 합니다." 요정이 말하였다.
"염려 마십시오!" 거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부자입니다.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가요?" 요정은 물었다.
"좀 더요." 거지가 말했다.
"지금, 자루 가득합니다." 요정이 말했다. "더 채우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아주 조금만 더 넣어요." 거지는 말하였다.
요정은 좀 더 부었다. 결국 자루는 터지고 땅 위로 떨어진 모든 금은 먼지로 변했다. 그 거지는 낡고 터진 자루 이외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는 전처럼 불쌍한 거지였다.
(‘Just a little more,' said the beggar.
Fortune put it just a little more. The bag broke. All the gold fell through upon the ground and turned to dust.
The beggar had nothing left but his old broken bag. He was as poor as he had been before.)
윗글은 비록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나친 욕심을 부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권력을 한번 잡으면 물러날 줄 모르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경우도 있고 도박꾼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가산을 탕진하기도 한다.
고대 희랍의 아폴로 신전(神殿)의 대리석 벽에는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즉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이 조각되어 있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회자되어 온 많은 의미를 함축한 이 명언은 자기 분수를 알라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중용(中庸)의 중요함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