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그 뜨거웠던 폭염을 이겨내기 힘겨워
몇번의 고비를 마주했던 우리집 누렁이 해피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
너무 늙고 쇠약해서 밥조차도 잘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동물 보호소에까지 전화를 해봤고
심지어는 안락사쪽을 알아보기 위해서 동물병원에도 문의를 했던 나로서는
오늘 어머님 댁에 들렀다가 어머니로부터 해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까지 붉어졌지만
어머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어서 담담하게
해피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어떻게 산에다가 묻었는지 이야기도 들었다.
겨울이라 땅이 얼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해피의 생각에 마음도 울적하고
그 오랜 세월을 줄에 묶여 지내면서도 풀어달라 한번 보채지도 않았던
너무도 착하고 의젓했던 해피, 가엾은 해피를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을 하니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0 년도 더 된 어느날 밤에
조카녀석이 밤 늦게 술을 마시고는 택시를 타는데
개 한마리가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보여 차에 타라고 했더니만
한치의 망서림도 없이 택시에 올라 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별볼일 없는 잡견이 버려졌다가 누군가가 이뻐하니까 따라 들어왔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 녀석을 볼 때마다 예사롭지 않은 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피는 그렇게 해서 우리집의 개가 되었고 사는 동안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나름대로는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줄을 풀어놓지 못하고 항상 묶어 두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은 너무 안되었기에 잠시 줄을 풀어 놓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뒷다리 한쪽을 심하게 다쳐서는
집으로 돌아온 것, 그 후로 우리는 해피를 풀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도 다리는 잘 회복이 되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왔지만
아마도 우리 해피를 탐내어 누군가가 포획을 하려 했거나 개장수가 잡으려다가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 우리 가족들은 절대로 해피를 밖에 내 놓지 않았다.
목에 줄을 매고는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해피의 일생은 과연 어땠을까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저 넓은 들과 산을 뛰어다니고 싶었을까!
조카에게 가끔씩이라도 산책을 시키라고 개줄도 사다 줬었지만 아마도 그 개줄을 매고서
산책을 나갔던 일은 몇번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가끔씩 집에 들렀을 때 내가라도 산책을 시켜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가슴에 맺힌다.
해피야, 정말 미안해!
지난 여름 그 뜨거운 폭염아래서 제몸하나 겨우 가릴 작은 그늘에 의지하여
숨을 헐떡이던 해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형에게 저 쪽 창고 쪽으로 해피의 집을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만 하고는
내가 옮겨줄 엄두도 내지 못한 것 역시 죄책감을 안긴다.
집의 일은 큰형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가 마음대로 했다가는 또 어떤 소란이 일어날지 잘 알기에
큰형이 알아서 하도록 그냥 두어야만 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해봐도
이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마음은 가릴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해피를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용서를 구하게 되는구나!
이번 겨울 추위는 또 얼마나 혹독했던가?
그 모진 겨울 추위속에서 아파야 했던 해피를 노모 혼자서 마음을 졸이며 돌보셨으니
평소 자주 해줄 수 없었던 먹거리가 생기면 해피에게 먼저 갖다 주시면서
조금이라도 먹게 하려고 애를 쓰셨던 어머님은 이제 다시는 개를 들이지 않으시겠단다.
내 살아 생전에는 이제 개는 집에 들이지 않겠다시며 손을 흔드시는 어머님!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하셨다는 것 잘 압니다.
아마도 해피가 저 세상에서도 잊지 못하고 보은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피는 좋은 곳으로 갔을거에요.
누구에겐가 교육을 받았거나
아니면 학대를 받았던 이력이 있었을지도 모를 해피.
그는 절대로 자신의 머리를 사람의 손에 호락호락하게 내어주지 않았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면 어떻게든 머리를 피했고 그 대신에 손바닥을 보여주면
그 손바닥은 혀로 핥았는데 아무래도 해피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겠지?
누가 보아도 혈통 좋은 진도견이었던 해피는
그 외모나 성품 그리고 의연한 태도등으로 보아 틀림없이
어느 귀한 진도견의 혈통을 물려 받았을 거라는 추측정도만 할 수 있을 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 조카녀석을 따라 우리집까지 왔는지 그 비밀을 이제는
영원히 알 수도 없으려니와 다시는 해피의 환대를 받을 수 없다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서 울고만 싶다.
인연은 맺는 것 보다 끊는 것이 힘들기에
함부로 맺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겠지만 동물들과의 연 역시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느 쪽이든 헤어짐이 너무나 슬프고 아프다.
이제 가고 없는 해피, 지난 번 집에 갔을 때 제대로 들여다 보고
따뜻한 손길이라도 한 번 더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텐데
너무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진정으로 해피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수 없이 되뇌어야만 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해피야, 하지만 이렇게 내 마음이 아프고 후회스러운 것을 보니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였구나!
정말 고마웠다, 네가 우리 곁에 있어줘서 우리는 든든하고 행복했는데
친구라면서 정작 너의 안위와 행복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
이 미안함을 이제와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해피야!
부디 다음세상에서는 개로 태어나지 말고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너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개를 사랑해주면 어떻겠니?
우리는 못했던 멋진 사랑으로 너 보다 훌륭한 개와의 사랑을...
이제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그 동안 못다했던 자유를 누리렴.
오늘 나는 차마 너의 집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왔단다.
그 곳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던 너의 모습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외면하고 뒤돌아 보고 싶었던 마음도 거두었구나!
나도 언젠가 너처럼 이 세상을 떠나겠지.
그 때 만날 수 있다면, 그 때 우리 서로 알아볼 수 있다면
나는 좋을 텐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안녕...
잘 가거라 멋진 해피야!
2013년 01월 20일 일요일 / 지난 18일에 세상을 떠난 해피를 생각하며...
다행이도 몇년 전 구형 전화기로 찍어 놓았던 사진이 3 장을 찾아냈다.
전에 컴에 저장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해피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사랑했다면서 사진 한장도 없다면
말도 안되는 나의 위선적인 이 글을 용서하지 않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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