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 설한이
그토록이나 서러웠을까!
참고 참았던 울분이 저렇게 눈이 되었을까...
토해 내고 또 토해 내도
끝이 없을 것처럼
그렇게 하얀 눈을 쏟아내고 있다.
한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만큼이나
시원하게 내리고 있는 저 눈 속을 무작정 걷다가
문득 뒤돌아본 그 길에
한 줄로 가지런하게 찍혀 있는
내 발자국을 보면서
너무도 외로워 몸서리쳤던 기억을
오랫만에 떠올려본다.
다시는, 다시는 혼자 있지 않겠노라고
그토록 다짐했었는데도
나는 아직 혼자다.
내가 먼저 사랑을 밀어낸 적 단 한번도 없었지만
내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사랑은
모두가 추억 속에만 살고 있나보다.
사랑은 그다지도 어려운 것
쉽사리 아무에게서나 피워낼 수 없는 것
사랑이라 믿고 싶지만
이내 배신의 날카로운 비수로 돌아오는 믿음...
엇갈리는 운명처럼 그렇게 사랑은
심술궂다!
그래,
쉼 없이 내려서 온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려라.
더럽고 추한 세상은 보이지 않도록
내 가슴속의 아픈 상처도 다 묻혀지도록
그렇게 끝없이 내려라!
사랑이라는 뜨거운 선혈만이
그 위에 또렷하게 그려질 수 있게
온 세상이 하얗게 하얗게 덮여버려서
더 이상은 사악한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우리네 가슴도 깨끗하게 정화 되어
눈빛으로 빛나는 보석같기를...
사랑하는 사람아!
거기 그렇게 서서 손짓만 하고 있어도
내 가슴에 울리는 바람소리로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지만
그 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어
눈길을 걸었다오.
머리 위에 하얗게 쌓인 눈을 털며
당신에 대한 그리움도 털어버리려 했지만
오히려 차갑게 젖어드는 날카로운 당신의 눈빛
가슴과 등으로 서늘하게 스며드는
그 것은 진정 지울 수 없는
당신과 나의 시간들...
하얗게 눈이 내리는 세상을 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을 뿐인
시베리아 그 넓디 넓은 눈밭이 떠오른다.
그 순백의 깨끗함 속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그럴 수만 있다면!
저 눈이 쌓이고
더러운 세상을 덮어서 보이지 않았으면
당신과 잠시나마 그 새하얀 꿈을
보고 싶다.
내가 남긴 그 길에 하얀 발자국을
가슴속에 그려 놓고
잊지 않고 싶은데...
당신에게로 가는 내 마음의 길을
그렇게 깨끗하고 한결같음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눈 속으로 보는 당신과의 사랑을
사랑하는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그 시리도록 아픈 그리움도!
폭설처럼 몰아치는 사랑!
그 사랑을 쌓아두고
기다리는 이 마음.
당신을...!
*부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