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짬이 날 때는 사전을 뒤적인다. 뜻밖에 얻는 수확도 많다. 특히 어려서 어른들이 사용하시던 우리말을 만날 때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갚음’이라는 단어도 이렇게 얻은 소득이다. 뜻은 이렇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함.’이라고 나와 있다. 이와 어감이 비슷한 ‘앙갚음’은 알고 있었어도 이런 교훈을 주는 우리말이 있는 줄 몰랐다.
이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연세는 많아지는데 해드려도 소용없거나, 해드릴 수 있는 게 점점 줄어서였다. 뵐 때마다 내 걸음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곳에 가 계시는데도 나는 내 앓음자랑하기 바빴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가며 까마귀만도 못한 짓을 했다.
친정어머니는 지혜로운 분이다. 층층시하에서 긴 세월 지내다 보니 눈치도 빨라졌으리라. 자식들에게 뭐가 필요하니 사오라고 당당해도 될 텐데 늘 에둘러 상대방 형편부터 살피신다. 형제들도 엄마의 그러한 성격을 아는지라 서로 미루지 않고 각자 척척 알아서 한다.
어버이날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 모르게 장독대에 가서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하던 행동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커다란 항아리에는 소금이, 장항아리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이 가득하여 딸들이 숱하게 퍼 날랐는데, 이젠 항아리 크기부터 작아졌다. 내용도 넉넉하지 않지만 내년 장 담글 때까지는 드실 양이 남아 있었다.
며칠 전에는 전화를 하시어 햇마늘이 나왔느냐고 물으신다. 마늘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그렇게 비사치신다. 어머니에게 받아먹을 때 나는 당연한 걸로 생각했는데, 자식에게 받으시는 건 왜 그렇게 어려워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고추장과 된장이 적은 걸 보고 왔기에 바로 가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다.
통화를 끝내고 친정 갈 준비를 시작했다. 된장 항아리 깊숙이 손을 넣어 노랗고 질척한 것으로 담고, 고추장도 덜어놓았다. 마늘은 아침마다 지나가는 마늘 장수에게 한 접 샀다. 대충 잘라준 줄기를 다시 짧게 자르고 겉껍질을 벗겼다. 짐도 줄었고 깔끔해졌다. 손수레에 담았더니 제법 무겁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는 목적은 햇마늘과 된장 고추장이 급한 게 아니라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이다. 전철과 버스로 왕복 여섯 시간 차를 타야 하는 걸 안쓰러워하면서도, 내가 요즘 허리가 아파 ‘너도 늙느라고 그런다.’ 하시면서도 부르는 이유. 또 남자만 셋 있어서 집을 비우면 내가 바쁘다는 것을 아시면서 무언가를 핑계 삼아 내려오도록 하는 건 대화의 결핍 때문이다.
지팡이를 짚고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일도, 의자를 개 옆에 갖다 놓은 것도 말벗이 필요해서가 아니겠는가. 텃밭에 당신이 젊었을 때 가꾸던 감자와 상추, 도라지와 아욱 등을 키우는 것도 드실 목적보다 자식들이 가면 자랑도 하고 먹는 걸 보려 하심이다.
이번에는 상추와 아욱, 부추를 가지고 왔다. 이미 손질해놓으셨다. 요즘 채소 가격이 싸기도 하지만, 부추는 우리 집 옥상에 있어도 주시는 대로 가지고 왔다. 서울에서도 흔한 채소에 지나지 않으나 그 푸성귀가 어머니가 주시는 마지막이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하지 않는다.
엄마의 집은 허름하지만 200평이다. 과수원을 하던 집이어서 방도 창고도 여러 개다. 안마당 화단에는 감나무와 머위, 패랭이와 철쭉이 있다. 쪽문으로 나가면 작은 밭이 있는데, 석류나무와 골담초와 방풍, 쪽파가 자라고 있었다. 담을 타고 올라가는 조롱박과 호박이 있다. 그러한 식물은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는 있으나 말벗은 되어주지 못한다.
집이 커서 적막도 클 것이다. 노인정도 있고 친척 같은 이웃도 있으나 귀가 어두워지면서 외출을 하지 않으신다. 듣거나 말거나 강아지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다 사람이 그리우면 나에게 전화를 하시는 듯하다. 다른 동생들보다 시간이 많고 당신과 나이 차가 적어 편하신가 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엄마 곁에서 하룻밤을 자면서도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둘이 쑥을 뜯어도 이게 엄마와의 마지막 소풍이 아닐까 하여 하자는 대로 한다.
올여름에는 고추도 그전보다 더 말려 고추장도 많이 담그고, 된장도 여유 있게 만들어 어머니를 흡족하게 해드리려고 한다. 이러한 일이 까마귀 새끼가 어미를 봉양하는 안갚음에 비하면 터무니없고, 불효가 줄어들 리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수다를 떨고 싶어도 엄마가 안 계실 날이 더금더금 다가오는 게 보여 불안한 마음 숨길 수가 없기에 그런다.
살아 있는 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했던가. 강아지를 찍는 척하면서 내일보다 젊은 엄마를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