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김장철이 찾아왔다.
요즈음엔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고 사서 먹는 집도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김장이라면 집에서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
특히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는 집에서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김장을 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아흔 중반을 바라보시는 어머님께서
김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기에 힘들어도 김장을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어머님은 노심초사 김장 걱정에 잠을 못 이루시기에
이번에도 서둘러 김장을 해치웠다.
다만 이번에는 절임배추로 사서 김치를 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일이 수월했는지
앞으로는 배추를 직접 심어서 김장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배추를 절이고 헹구어 김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본 사람들은 안다.
옛날 어르신들, 특히 어머님들은 정말 대단하시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남자들에게도 힘든 그 엄청난 일을 여자들끼리, 동네 어머님들끼리 모여서
다 하였으니 참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찍부터,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인 것 같다.
김장철이면 어머님을 도와드렸기에 그 일이 정말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보통 1접(배추 100포기) 반에서 2접 정도의 배추로 김장하는 게 보통이었기에
정말이지 그 일의 강도는 어마 무시했다.
배추와 무를 사다가 다듬고 절이고 헹구고 양념을 준비하고
그 모든 준비를 하는 데 보통 꼬박 2~3일 이상은 족히 걸리는 데다가 배추를 버무려서
단지에 차곡차곡 옮겨 담는 일로 꼬박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으니
김장이 얼마나 큰 일이었으면 1년 지 대사라 하였겠는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꿈만 같다.
그만큼 김치가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김장을 하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 춥고 배고팠던 날에 김장만 제대로 해두면 한겨울이 든든했을 우리네 어머님들!
김치로 국도 끓이고 찌개도 끓이고 콩나물을 곁들여 죽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만두도 만드는 등
김치 하나로 못 할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김치는 우리 식생활의 중심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며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김치 소비량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처럼 김치 소비가 많지 않다는 건 그만큼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밀고 들어왔다는 이야기일 텐데
김치보다 더 좋은 음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니 좀 씁쓸하다.
♣
김치가 홀대받는 세태를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음식문화가 바뀌어간대도 나는 김치 없이는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님이 떠나신 후에도 내가 먹을 김치는 직접 담아 먹을 작정이다.
그동안 어머님을 도와 익힌 실력이면 웬만한 주부 뺨치게 잘할 자신도 있고
실제로도 이미 확인한 바 있기에 김치 담는 건 자신 있다.
그나저나 김장에 대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김장을 여자들만의 일로 치부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다.
김장에서 다른 건 몰라도 배추를 절이고 헹구는 일과 무거운 것 옮기는 일 등
정말로 힘든 일들만이라도 곁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것인데
왜 그런지는 해보면 알 것이고 해 보고 난 후로는 안 도와주고는
밥을 얻어먹기 정말 미안할 것이다.
엥? 여자들에게 점수 따려고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왜 이렇게까지 강조하는지는 딱 한 번만이라도 해보면 안다니까?
아마도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라면 그날 이후로
절대로 김장을 여자에게만 맡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장담한다.
켁, 아예 감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서 드시겠다고?
흠... 그것까지야 뭐 내가 뭐랄 수는 없지, 아내도 찬성한다면야!
나는 김치뿐만이 아니라 고추장, 간장, 된장 모두 다 직접 담아서 먹을 생각인데
아직 그것들은 혼자서 직접 해본 적은 없기에 서둘러 배우려고 한다.
꼭 배우고 익혀서 내 손으로 담아 먹다가 누군가 후배에게 반드시 전해주고
떠날 생각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음식들이 내겐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오래도록 그 멋진 음식들이 전해져
사라지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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