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나는 결백하다, 죄가 없다, 떳떳하다고 말한다.
그냥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확신에 차 힘주어 말한다.
그만큼 평소에 나쁜 짓도 하지 않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며
웬만해서는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니 나도 그런 편에 속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범죄 이야기는 결코 내 이야기가 될 수 없고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확신으로
도대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면서 혀를 끌끌 찬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늘 자기는 아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강조하며
자신만만하게 나쁜 사람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향해
모진 말들과 손가락질을 퍼부어대곤 하는데 과연 그래도 괜찮을까?

그래,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만 무사히 잘 지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안전하게 평생 살 수만 있다면 그래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쁜 일에 휘말리기도 하고
불미스러운 일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도 어려운 것이기에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착하고 예의 바르고 양심적이며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고
언제든 얼마든 돌변할 수 있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죄,
내 의지도 아니었고 전혀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나로 인하여 발생한 각종 불미한 일들에 대한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가 의도적으로 한 언행이 아니었기에 나 자신은 전혀 알지도 못한 일이지만
어느 날 어느 자리에서 무심코 한 나의 행동 혹은 말로 인하여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오랜 시간 괴로움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고 나서는
'아, 도대체 우린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무서워진 적이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잘못, 나의 실수, 나의 죄!
그게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
차라리 내가 알고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하거나 만회라도 하여
마음의 부담을 덜고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의 잘못들은
나 자신만 까맣게 모른 채로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아파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무심코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라도 맞아 죽었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나의 한마디 말에
누군가 칼로 베인 것 이상의 아픈 상처를 입고 평생 나를 원망하며
살아갈 수도 있으니 매사가 정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도 맨발로 숲길을 걷다가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를 자칫 밞을뻔하였으나 가까스로 피하고는
좀 더 주의 깊게 발 밑을 살피며 걷게 되었는데
그동안 나의 부주의로 인하여 내 발아래 밟혀 죽은 생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되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개미부터 그보다 좀 더 큰 다양한 벌레들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명을 밟아 죽게 했을 텐데
그래도 나는 아무 죄가 없을까?
일부러 밟은 것이 아니라 모르고 밟은 거니까 괜찮을까?
아무리 하잘 것 없는 미물이라도 생명은 생명인데
내 발로 밟아 그 생명을 빼앗았다면 그건 엄연한 나의 잘못이다.
게다가, 때로는 아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빼앗은 생명들도 많은데
예를 들면 파리, 모기, 바퀴벌레 등 주로 해충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이롭지 않은 생명이라는 이유로
무지비하게 살충제를 뿌려 죽이고도 죄가 없다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그 모든 잘못까지 헤아려
사람들은 늘 잘못을 뉘우치고 겸허하게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자세로
하루하루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하고자 나름 노력은 한다.
지난 것을 다시 고쳐 잡을 수는 없으니 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하루하루 착하게 살려고 다짐하는 것으로라도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그 모든 잘못과 죄를 덜어내고 싶어 한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부지불식 간에 지은 나의 모든 잘못을 지울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벌어진 나의 과오까지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가기에
인생은 이미 너무도 무거워 감당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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